생물정보 태동기의 재미있는 사실들

어느 학문 분야든 성숙하다보면 해당 분야의 역사와 철학에 대한 연구가 따라오게 된다.
학문이 생기게 된 배경과 발전 과정, 패러다임의 변화, 다른 학문에 대한 영향, 연구자들의 분야
고유적인 연구 방법을 관찰하는 것은 재미있지 않을 수가 없다.

최근에 PLoS Computational Biology에 생물정보학의 뿌리라는
기사가 올라왔다.
유전체 모델이나 RNA 2차구조 같은 것을 촘스키식 문법으로 다룬 것으로 유명한
David Searls가 쓴 생물정보학의 역사에 대한 글인데, 깊게 잘 다루었다.

철학적인 생각은 글에 남겨두고, 의외로 모르고 지나가기엔 너무 아쉬웠을 만한 재미있는 사실 몇 가지만 추려보면,

  • 컴퓨터를 생물 연구에 처음으로 쓴 사람은 너무 뻔해서 약간은 재미없게도(?) Ronald Fisher인데, EDSAC을 개발한 Wilkes와 Wheeler가 직접 작업을 돌려주었다. (1950년)
  • 소개가 필요없는 Alan Turing은 말년에 주로 발생학 연구를 했으며 (1952년~), 역시 정보이론과 논리회로의 창시자격인 Claude Shannon은 심지어 박사학위를 계산유전학에 대한 연구로 받았다. (1940년)
  • 빅뱅이론으로 유명한 이론물리학자 George Gamow와 Monte Carlo 시뮬레이션으로 유명한 이론물리학자 Nicholas Metropolis는 유전코드의 상세한 기전이 밝혀지기 전에, 서열의 통계적 분석과 시뮬레이션으로 유전코드의 이론적 특성 연구를 했는데 이 연구가 거의 역사 최초의 생물정보학 연구로 보통 받아들여진다. (1954년)
  • 역시 초기에 컴퓨터를 가장 널리 사용한 것은 결정학자들이었는데, 1952년에 이미 EDSAC으로 계산한 논문이 나왔다.
  • 또 다른 생물정보학의 주세부분야 중 하나인 계통분류계산은 1957년에 처음 시작되었다. 요즘 화학유전체학에서 거의 표준처럼 쓰이는 타니모토 계수는 1960년에 IBM의 수학자인 타니모토가 세균 분류를 위해 개발했다.

보통 어디서 트렌드따라 뚝 떨어진 신생융합듣보잡 취급을 많이 받는 생물정보학이지만 의외로 뿌리는 깊다. +_+

철이 안 든 어린이를 위한 백과사전

어제 친한 친구가 "너한테 딱 어울리는 책이야."하면서 책을 한 권 선물해 줬습니다. (고마워!) 제목은..

The Encyclopedia of Immaturity

미성숙 백과사전 또는 애들 장난 백과사전 (The Encyclopedia of Immaturity)! 처음엔 보고 웬 면역학 백과사전이야? 했는데 자세히 보니 미성숙이네요. 밑에는 "절대로 철들지 않는 방법 완벽한 가이드"라고 스티커가 붙어있습니다. 모나리자 안경하고 수염은 제가 받자마자 제목에 맞게 낙서를 쓱쓱~~~한 것은 아니고; 처음 살 때부터 친절하게 낙서가 돼 있었답니다. ㅎㅎㅎ;

책을 펴낸 곳도 이름이 Klutz(얼간이)인데요. 3세부터 103세까지의 어린이를 위한 재미있는 활동에 대한 책이나 장난감을 파는 곳이라고 하는군요. ^_^* (저도 29살 어린이~)

아주 고품질의 스프링 양장 표지를 열면 풀컬러 400페이지짜리 진짜 백과사전이 펼쳐집니다! 내용은 하나 하나가 모두 주옥같은 애들 장난이예요. 절대 철들면 할 수 없는, 우리 어린이들을 위한 친절한 사전! 예를 들면 "코에 숫가락 붙이는 법", "물수제비 뜨는 법", "젓가락 행진곡 연주하는 법" 같은 아주 실용적인(!) 것도 있고, "숙제 안 했을 때 선생님한테 변명하는 법", "만능 독후감으로 숙제 10초만에 하기" 같은 권력에 항거하는 어린이를 위한 팁, "난쟁이 사진 찍기", "양면이 앞면인 동전 만들기", "은수저 부러뜨리기", "걸어다니는 팬티 만들기", "지폐로 반지 접기, 비행기 접어 날리기" 같은 우리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가 가득합니다. ^-^*

특히 제가 유용했던 건, "손가락 입에 넣고 휘슬 소리 내기", "겨드랑이로 방구소리내기", "펜 잡고 돌리기" 같은 고급 필수 테크닉을 아직 익히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모범 어린이의 필수 교양을 배울 수 있게 됐네요!

말로만 들으면 좀 감질나니 몇 페이지를 한 번~

풍선껌으로 몸무게 재기/강아지 하품시키기

풍선껌으로 몸무게 재기, 강아지 하품시키기 (하품하는 사람을 보면 하품을 따라한다)

커피에 소금 몇 스푼 넣으세요?

커피집에서 설탕에서 소금맛 제대로 내는 방법!

이 백과사전에 있는 것만 충실히 익히면 주변 사람들에게 "나이 헛 먹었구나"하는 칭찬을 들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빅맥버거, 감자튀김, 콜라를 준비해서, 믹서기에 넣고 갈면 무슨 색이 나올까요!

—> 정답은 사전 뒷쪽 해답부분에 있습니다. -ㅇ-;

《번역은 반역인가》 – 박상익

안정효씨의 다른 책을 찾으러 도서관에 갔다가, 확 눈에 띄는 빨간 색의 표지 때문에
이 책을 발견했습니다. 서양사 관련 도서를 많이 번역하신 어느 교수님이 쓰셨는데,
표지에서부터 “대학원생들에게 번역 하청을 맡긴 교수가 떳떳이 활동하는 사회..”
라고 짧은 글로 한국 번역문화의 문제점을 확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책은 처음에 번역이 역사적으로 문명의 발전에 기여해온 배경, 한국 번역서의
역사적 흐름을 분석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유럽 사회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 이슬람과 그리스 책들을 번역한 서적들이 누적되면서라는 점이
설득력있게 전개되어 있습니다. 유럽 사회는 왠지 아주 태고적부터 발전되었지
않았을까 누구나 생각을 해 왔겠지만, 이슬람에 한참 뒤쳐진 거의 야만인 시절의
시기에 선구적인 번역가 집단들의 노력으로, 옛날에 축적된 지식들이 자국어 문화로
편입되면서 발전의 토대를 쌓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저도 지금까지는 번역을 그냥 시간을 절약시켜 주는 정도로 별것 아니게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양쪽언어를 모두 했던 유명한 문학가들도
모국어책에서 훨씬 느낌이 정확하게 와 닿고 정보의 양이 차이가 확실하다는
점에서 확실히 번역서가 있고 없고는 해당 국가의 문화에 들어갔는가 아닌가의
차이가 되어 버린다는 생각에 자연스럽게 끄덕이게 됩니다.

우리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탄 난쟁이와 같아서, 그 어깨로부터 거인들보다
더 멀리 많은 사물을 볼 수 있으니, 이는 우리의 시력이 예민하거나
우리의 재능이 출중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들의 거인다운 위대함에 의해
지탱되고 고양되기 때문이다. — 52페이지 (사르트르의 베르베르의 말을 재인용)

그런 면에서, 번역서의 품질은 결국 그 문화의 깊이와 넓이를 결정하는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되고, 지금같이 오히려 원문보다도 읽기 힘든 번역서가 판치는
상황은 분명히 문제가 심각합니다.

그러나, 번역을 해 보신 분들은 모두 알 수 있듯이, 한국 출판계의 상황은
별로 좋은 품질로 번역서가 나올 만한 상황이 아닙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번역해 봐야 시급으로 따지면 편의점 알바보다도 못한 보수가 나오는 상황에서
여간 재력이 있지 않고서는 번역을 제대로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삭제) 책이 나오는
것이 어찌보면 사회적으로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번역을 이처럼 하찮게 여기는 것은 우리의 학풍이 이 땅에 발을 딛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피할 수 없는 증거로 여겨진다. 이 땅에서 살면서 마치 자신이 미국 시민인 것처럼 행동하고, 한국 대학에서 월급을 받으면서도 마치 미국 대학의 교수인 것처럼 행동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안타깝게도 ‘주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찾아보기 힘들다.
— 207페이지

원서로 안 읽는 후배녀석들을 구박할 때,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기초학문 정도는 모국어로도 충분히 배울 수 있어서, 본인이 관심만 있다면
12살짜리 커미터, 13살짜리 SCI 논문 발표자가 될 수도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정부의 장기적인 지원, 학계의 번역에 대한
인식 재고, 도서관 문화의 개선 등 여러가지 해결책이 이 책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번역에 대한 생각을 제대로 정리할 수 있게 되어서 무척 다행입니다. ^^

저도 이제 파이썬 마을에서 답글 달 때, 영어로 된 매뉴얼에 링크 덜렁 달고
끝내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반성~)

4천5백만 국민들을 위한 지적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투입되는
정부 1년 예산이 서울 강남의 아파트 1채 값이다.
— 224페이지

《한국전쟁》

이 책은 사실 《도덕교육의 파시즘》을 살 때 운송료를 공짜로 해보고자 3만원 채우기 위해서 넣은 책인데;; 그 영향인지 한참을 안 읽고 쌓아뒀다가, 요즘 시험기간이라 주의가 매우 산만해져서 결국은 이 책을 다 읽고 말았습니다. –;;

이 책은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일제시대부터 한국전쟁에 영향을 줄 수 있었던 여러가지 배경들부터 전쟁 중, 휴전 협정, 정전 이후의 영향 등에 대해서 정치/국제/사회적인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즉, 전술과 상세한 과정을 다룬 전쟁사책은 아닙니다. (저는 사실 그런 줄 알고 샀습니다. 전쟁사책을 좋아해서 -O-)

그동안 반공이데올로기가 지나치게 과장된 교육을 받아온 20대 이상의 대부분의 국민들이 잘 모를만한 내용이 책에 여러가지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이미 학계에서는 누구나 아는 사실고 다같이 동의를 하는 사실인데도, 일반인들이 들으면 “뭣이!!”하고 놀랄 것들 말이죠.. 일부러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기에, 저도 이런 중요한 사실들을 잘 몰라서 조금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책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주제들은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 한국전쟁은 왜 일어났는가?
  • 누가 전쟁을 일으켰는가?
  • 누구의 책임인가?
  • 왜 하필이면 50년 6월 25일에 일어났는가?
  • 왜 북한군은 낙동강까지 밖에 못 내려갔는가?
  • 유엔군은 왜 38선을 넘었는가?
  • 왜 압록강까지 다 가서 또 밀려 내려왔는가?
  • 과연 중공군의 인해전술은 진짜 전술인가?
  • 왜 중공군은 대전까지밖에 안 내려갔는가?
  • 51년 여름부터는 왜 전선의 변화가 별로 없는가?
  • 미국은 왜 이승만을 제거하려고 했는가?
  • 북한이 망하면 북한땅은 남한의 통제하에 들어가는가?

해방이 되었을 때 김구나 이승만을 포함한 여러 세력의
정치적인 다툼이나 국제협정의 오해, 국제정치적 미숙으로 인해
결국 남한만의 선거가 이뤄지는 등의 전쟁 전의 정치
상황은 별로 국사 교과서에서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상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소련과 중국이 전쟁에
상당히 소극적이었고 되도록이면 안 하려고 했던 것도
교과서에서는 알 수 없었던 것이지만, 당시 국제 상황으로
보면 당연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도 설명되고 있구요.

그리고 중국과 소련이 거부권이 있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임에도 불구하고 유엔군이 파견될 수 있었던 것도 고등학교때
참 궁금했는데, 중국은 당시에 국민당정부가 유엔 대표였고,
소련은 중국 대표를 마오쩌뚱계열로 안 바꿔준다고 삐져서 안 나오고
시위중이었다는군요. -O- 하여간 그런 사소한(?) 몇가지 일이
뒤에 미친 영향은 정말 대단한 것이라는 것이..

그 외에도 유엔군에 참여한 많은 국가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이라기 보다는, 미국이 참전 안 하면 마셜플랜의 원조를 안 해준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참여하게 된 것을 보면 미국이 그때도 힘이 참 대단했구나 느낍니다. 또 하나, 이 책을 안 보더라도 꼭 알아둬야 할 것 하나를 꼽자면, 대한민국은 유엔에서 선거가 가능했던 지역에 한하여 정부 영향력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현재 정부의 이북5도청은 국제법적으로는 근거가 없는 기관이고, 북한이 망해도 유엔이 먼저 들어가야 한다는군요.

이 책을 보면서 이승만에 대해 느낀 점이 참 남베트남 대통령들하고 닮았다는 점입니다;; 미군만 믿고 북침을 하겠다고 막 설치지를 않나, 정전협정 하는데에도 얼마나 죽던 북한 끝까지 밀어야 속이 후련하다고 협정에 결국 조인을 안 해서 휴전협정서에 남한측 대리인의 싸인이 안 되어있다고 합니다. -O- 전쟁 중에 전선에 있는 부대들 병력을 빼서 국회를 장악하고 계엄령을 내리는가 하면.. 《베트남 10000일의 전쟁》을 읽었을 때 남베트남 정부의 어이없음을 골고루 갖춘 게.. 지금은 한국이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라서 다행이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은 한국전쟁과 관련된 여러 다큐멘터리에 고문역할도 하고 학부 교양 강의도 하신 교수님이 쓰신 것이라, 일반인도 쉽게 읽을 수 있게 쓰여진 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객관적인 논조를 유지하려고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어서, 읽는 사람이 편견을 가지지 않고 자기가 진실을 판단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즉, 자신의 논점을 직접적으로 노출하는 것이 아니라, 학계의 여러 연구자료와 가설들과 논박들을 골고루 소개하는 점에서 신경을 많이 썼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좌우합작운동은 우리에게 또 하나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사회 지도자는 중요한 시기에는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한 개인이 아니라 공인이기 때문이다. 좌우합작운동을 실패에 이르게 한 것은 바로 여운형이라는 한 지도자의 죽음이었다.
책 p.111

《대체 뭐가 문제야?》

제럴드 와인버그의 또 다른 유명한 책 《대체 뭐가 문제야? Are Your Lights on?》가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먼저 번역서가 나온 《컨설팅의 비밀》도 무척 재미있게 읽었기에, 이 책도 다른 책 읽던 도중에 참지 못하고 덥썩 읽어버렸습니다. (지금 사 놓고 안 읽고 쌓아둔 책이 5권 =.=;)

이번 책은 문제를 해결하는 전문 컨설턴트가 아니더라도, 인생에서 문제가 한 번이라도 있었던 사람들이라면 언제나 그 문제를 해결할 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침 먹다가 밥풀 흘리는 사소한 문제부터 시작해서, 버스에서 출근할 때 자리에 못 앉아서 피곤하게 서있다가 낮에 존다던지, 한 번 죽을 때 마다 수천만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프로그램이 왜 죽는지 모를 때 문제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 시야를 넓혀줍니다.

SI 프로젝트를 하다가 꼬일 때, 대체로 보면 문제가 뭔지 제대로 파악을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2004년에 했던 K모사 프로젝트를 되돌이켜 보면, 처음 1달간, 발주사의 구체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무엇이 필요한지, 해결 방법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파악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상상을 곁들여서 마구 커다란 스펙을 잡아놓고 진행하다보니 결국에는 기능은 엄청나게 많고 발주사는 그래도 기능이 모자란다고 화를 내는 지경에 이르렀던 적이 있습니다. 프로젝트를 다 끝내고 나서 되돌이켜 보면 그 사람들이 필요했던 것은 우리가 만든 기능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데, 문제가 뭔지도 모르고 나름대로의 가정을 덧붙인데다가, 문제를 제시한 사람들이 말하는 해결방법을 곧이 곧대로 다 듣다보니 일이 커질 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도 어려워지게 되었던 정말 살아가는데 이렇게 하면 안 되는구나 하는 온갖 교훈을 다 얻은 프로젝트였지요. -.-;;

이 책에서는 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넓히기 위해서, 누구의 문제인가?, 무엇이 문제인가?, 문제의 핵심은 무엇인가? 같은 기초적인 것을 찾는 방법을 왕공룡씨 엘리베이터을 사례로 들고 있습니다. 한 건물의 엘리베이터 트래픽 문제가 주지사나 법의 문제까지도 생각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점이나 엘리베이터 주위에 낙서할 수 있는 크레용을 놓는 것으로도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 같이 문제 자체에 더 집중하면 얻을 수 있는 손 쉬운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책이 굉장히 짧기 때문에, 내용을 더 소개하다보면 스포일러가 돼 버릴 것 같아서, 내용 소개는 여기서 줄이고, 인상적이었던 부분 몇 개 인용해 봅니다. 🙂

유머 감각이 없는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마라.
– 책 44페이지

(13명의 학생 중 1명이 교실에서 자꾸 담배를 피울 때 학생들이 토론해서 해결하려고 하는 이야기 중에서)
만약 앞서의 답이 3이었다면, 즉 ‘교수’의 문제였다면 그 결과가 어떠했을까 생각해 보자. 아마 다음과 같이 하지 않았을까?

  • ‘담배를 피울 수 없도록’ 규정을 만들고 흡연 학생이 수업을 그만 두도록 해서 그가 분개하도록 만든다.
  • 담배를 피우도록 규정을 만들어서 담배를 못 피우는 일부 학생들이 수업을 그만두도록 하거나 혹은 담배 연기의 영향으로 점심조차 못 먹게 만든다.
  • 흡연 강의와 금연 강의로 나누어서 날짜나 시간을 분리하여 모든 사람을 불만족스럽게 만든다.

그러나 이처럼 무언가를 규정으로 만드는 대신 교수는 그 자신만의 문제해결 교훈을 따랐다.

그들 스스로 문제를 완벽하게 풀 수 있을 때에는 그들의 문제 해결에 끼어들지 않는다.
– 책 111페이지

학교에서 제대로 된 문제 해결사들을 배출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학생들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알 것이다.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문제라고 ‘말하는’ 것이 그냥 문제인 것이다.
– 책 164페이지

《도덕교육의 파시즘》

얼마 전 TV에서 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보다가, “아!!” (수화로는
검지만 펴서 입에 대고 앞으로;;) 하며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낸 책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도덕 교육의 파시즘》 (ISBN 8987671410) 입니다.
한 철학교수가 여러 도덕교사 모임에서 한 강연을 책으로 묶은
것인데, TV에서 보자마자 바로 충동적으로 구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

이 책에서는, 한국의 초등/중학교 도덕 교과 교육은 도덕적인 사람을
만들기 위한 교육이라기 보다는, 권력의 말을 잘 듣는 착한 노예를
강요하는 것을 교과의 깊숙한 곳부터 깔고 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실제 교육 현장의
교사들은 교과서와 교육 지침에 따르지 않고, 원하지 않게 지나치게
창의적인 강의를 해야하거나 엉뚱한 다른 용도로 전용되는 것을
문제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의 도덕교과는 사회적인 규율과
규범들을 왜 그래야 하는지, 그렇게 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채, 곳곳에서 단지 열심히 권력자의 눈치를 봐서 덤비지 말고
잘 살라는 것과 같은 시대착오적인 강요들로 넘쳐다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책 속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 중 대표적인 것 두 개만 인용해 보자면,

삶의 보람을 말하든 자아실현을 말하든 결론은 언제나 마찬가지이다.
도덕 교과서는 끊임없이 “공동체의 발전과 복지증진에 기여”하는 것이
올바른 자아실현이며, 보람 있는 삶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학생들을 언제라도 타인과 공동체를 위해 자기를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으로 기르는 것이야말로 도덕 교과서가 가르치는 도덕의 존재이유이다.
— 책 p.32에서

한국의 도덕 교과서는 자기가 타인이나 사회에 대해 행할 수 있는 악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이 말하면서도 타인이나 사회 또는 국가가 개인에게
가할 수 있는 악에 저항해야 할 의무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말하지
않는다. (중략) 그런데 한국에서 예절이란 처음부터 사람들 사이의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전제하고 있는 규범이다. (중략) 이를 통해
사람들 사이의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제도화한다. (중략) 현실적으로
정착되어 있는 불평등한 사회관계에서 아래에 있는 사람이 지켜야 할
도덕뿐만 아니라 위에 있는 사람이 지켜야 할 도덕 역시 학생들이
배울 필요가 있다. (중략) 도덕교육은 사회적 약제에게 예절을
강요하는 만큼, 사회적 강자의 폭력과 횡포에 대해 어떻게 자기를
지켜야 할지도 말해주어야 한다.
— 책 p.36에서

그래서, 결국은 도덕 교육은 과거 군부정권 시대의 노예화 교육의 도구로
사용되던 것이 이제는 일반인들의 상식에까지 침투하여, 이제는 개인의
국가에 대한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나 권위자에 대한 절대적 복종 등을
보고 감동을 할 정도까지 전개가 돼서 결국은 최근 H교수 사태에서
말도 안 되는 국익론까지 등장할 정도가 되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 그동안 도덕 교과서 외에도 여러 곳에서 이런 비슷한 사례를 보고서는
평소에 많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요즘 TV에 나오는 것으로는
조그만 꼬마 여자애가 여기저기 난로를 켜고 온기를 쬐고 있는 어른들을
따라다니면서 “꺼주세요”하고 지나가는 광고가 있습니다. 굉장히 아름다운
행동을 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 따뜻하고 아름다운 것을 강요하는
음악이 배경음악으로 깔립니다. 이 광고를 되새김해 보면, 전혀 낭비로
보이지 않고 오히려 온기를 아끼려고 난로에 붙어있다던지 난로를 쓰는데
있어서 적당한 사용이라고 생각되는 것조차도 무작정 끄기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전혀 공감을 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도대체 낭비의 기준이 무엇인가에
대해 혼란을 주며 모든 국민을 나쁜 사람으로 몰고 있습니다.

똑같은 사례로 KTF광고 중에서 사람도 없는 지하철에서 “나 지하철이거든?
좀 있다가 전화할게”라고 하는 것도 있고.. 흐흐.. 그 외에도, 제가 아주
싫어하는 TV 프로그램으로 “만원의 행복“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그래도 소득이 많은 측에 속하는 연예인들이 나와서
1만원으로 주로 먹을 것 같은 생활에 꼭 필요한 곳의 지출을 비상식적으로
아끼면서 1주일을 지내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이 끝나면
다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간다는 것을 꿈꾸며 진행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비정상적인 생활로 소비를 줄이는 것은 실현도 불가능하고 제대로 된 절약의
기준을 흐릴 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먹을 것을 아껴서 나중에
비싼 것에 쓴다는 식의 의식을 심어줄 수도 있어서 기초 소비재 내수 시장을
위축시키고, 부동산이나 외산 제품같은 것을 사는 것이 도덕적으로 더
옳은 일인냥 무의식 속에서 국민들을 혼란시키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것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내려오던 것입니다.
90년대 초반에 이경규가 나와서 한밤중에 차도 사람도 거의 다니지 않는
밝은 곳에서 차선에 딱 맞춰서 서면, “우와~~” 하면서 칭송을 하며
가서 영웅으로 만들어주는 그런 프로그램이 그런 포맷의 전성기라고
생각됩니다. 신호등의 존재 목적은 신호등을 지키기 위한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사람과 자동차를 사고 없이 통행시키기 위한 것인데,
목적을 잊어버린채 맹목적으로 사람이 다니던 말던 칼같이 지키는 것을
강요하며, 왜 그렇게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당위성 없이 국민들의
무의식에 그런 것들을 주입시켜왔습니다. 오락 프로그램으로써 어쩔
수 없었겠지만, 지켰을 때와 안 지켰을 때의 시험/심리학적 비교를
해 보고, 밤에 통행할 때는 서행을 한다던지 등의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이 관련된 책의 부분을 하나 인용하면,

유감스럽게도 법은 완전한 균형과 공정성에 도달할 수는 없다.
설령 어느 순간에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현실의 권력관계는 언제나 변하는 까닭에 법이 지향하는 균형과 공정성이 언제나 그대로 유지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정당한 법을 마땅히 지켜야 하겠지만 법 자체를 절대시 하는 어리석음에 빠져서는 안된다.
– 책 p.296

그동안 우리나라는 개화기-일제시대-군부정권의 흐름 때문에, 언론이나
정치인 등의 권력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항상 국민을 계몽하려고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국내의 언론사들은 거의 통계용으로 가입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까지 드는 OECD 통계 자료를 인용하여 국민들의 도덕이 해이해지고
있다며 항상 뭔가를 시킵니다. 예를 들어 얼마 전에 통계청 자료를 이용해
거의 대부분 언론의 헤드라인에 오른
한국인 책값지출 거의 ‘제로’ 수준이라는
기사는 여기저기 비주얼한 자료가 가미되고 숫자로 채워져 있지만
전하고 있는 메시지는 “요새 니들 책을 안 읽으니 앞으로 많이 사서 읽어라.”라는
단 한 마디에 불과합니다. 국민들이 책을 안 사는 이유에 대해서는
사회적인 흐름을 분석해서 영향을 미친 것들을 고치던지,
대상인 국민들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고 감화를 줄 수 있는 방법으로
알게 모르게 스며드는 캠페인을 하는 등의 방법을 쓰는 것이
무작정 국민들을 비난하며 계몽하려는 시도보다는 훨씬 결과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국민들”이라는 대상은 일단 개체의
수가 매우 많기 때문에, 무슨 일에는 이유가 있고 그에 대한 이유가
논리적이라면 결과가 전통적 도덕에 옳지 않더라도, 흐름을 바꾸려면
양의학적인 결과 바꾸기보다는, 한의학에서와 같이 원인을 통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 효과적일 것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해지고 있는 만큼 이제는
확실하게 “계몽의 시대는 갔다”고 선언할 수 있겠습니다. 각자의 마음 속의
도덕은 이제 “~해야 한다”로 끝나는 말들로 가득찬 기억이 아닌,
“그래서 나는 ~한다”라는 식의 말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미 우리나라는
창의적인 지식인이 필요한 시기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월화수목금금금하면서 교수들에 대해 주입된 예절과 복종을 강요받는
시대에 대한 자성이 이제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제
우리나라도 “근면-자조-협동”이 지배하는 부품으로써의 개미 사회에서
충분히 벗어나고 있지 않은가 하고 희망을 가져 봅니다. 🙂

(참고: 이 책은 소수의견에 속하는 편이며, 다른 윤리교육학자들의 논리적인 반론들도 여럿이 있으니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인터넷에서 검색하셔서 반론들도 같이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Twisted 책이 진짜 종이 책으로..

Abe Fettig가 몇달 전쯤에 미리 얘기한대로, Twisted에 대한 진짜 종이 책이 나왔군요. Twisted는 워낙 방대한 디자인이라 철학을 이해하는 데에만 한참 걸리는 것을 감안하자면, 책에서 풍부한 도안을 통해서 알려주는 것이 필요할텐데 늦게나마 아무데서나 볼 수 있게 책이 나와줘서 잘 됐습니다. (게다가 표지가 이렇게 멋지다니!!)

자세한 내용이나 목차 같은 것이 아직 올라온 온라인 서점이
없어서 무슨 내용이 다뤄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회사에서
Twisted를 쓸테야! 하고 혼자 주장할 때 “책도 나왔으면 이제 대세 아닌가?”라고
말할 수 있는 뭔가 지원군이 생겼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아하하;;;;;

Twisted가 아무래도 국내에서 어필할 수 있을만한 성격이 아니다보니, 번역서가 나오지는 못하겠지만 수입이 얼른 돼서 싸게 구입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헤드퍼스트 디자인 패턴

2005년 졸트상 서적분야에서 1위를 한 말이 필요없는 그 책! Head First Design Patterns가 드디어 번역본이 나왔습니다!
예약신청을 해 놓았었는데, 예정 출간일보다 좀 이른 8월 31일에 배송해줬군요.

아.. 받아보는 순간부터 이 산뜻한 느낌.. 한빛미디어가 갈수록 책을 이상하게 좀 싸구려티나게 만들고 있었는데, 이번엔 신경을 좀 썼군요! 표지재질, 판형, 종이질, 종이무게 모든 것이 아주 좋습니다. 원서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군요~ 글꼴셋도 괜찮은 편이고, 레이아웃도 전혀 안 깨졌네요~ 딱 하나 흠을 잡자면, 사람이 쓴 것 같이 표현하는 글꼴 중에 하나가 가독성이 지나치게 안 좋은 게 하나 있어서 그걸로 되어 있는 건 좀 읽기가 힘드네요. 은진체 같이 예쁘고 읽기 좋은 글꼴을 썼으면 좋았을걸.. 🙂



© 한빛미디어, 2005.

역시 이미 다른 헤드퍼스트 씨리즈에서 어느정도 알려진 접근법이긴 하지만, 다시 한번 감탄을 할만 하군요. 🙂 앞의 꽥꽥대는 오리/로켓추진오리/고무오리 얘기는 원문에서는 모국어가 아니라 그런지 유머를 바로 느낄 수가 없었는데, 한국어로 읽다보니 너무 재미있어서 막 버스에서 깔깔대며 읽었습니다.;; -O-



© 한빛미디어, 2005.

오픈룩에서도 가끔 쓰는 방법이지만, 원래 래쓰님 홈페이지에서의 셀프 인터뷰는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을 한번쯤 생각해보고 설명을 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좋은 흥미로운 방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각 디자인 패턴들이 의인화돼서 자기 해명도 하고 그러는 것 아주 재미있네요. 🙂 이런 부분 번역하기가 상당히 힘들었을텐데 깔끔하게 원문의 유머를 잘 살려서 번역되어있어서 정말 좋습니다!



© 한빛미디어, 2005.

이 책의 앞부분에서는 자바나 유사한 언어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 밑에 “마케팅 팀에서는 신용카드만 있으면 살 수 있다고 합니다.”라고 깜찍하게;;)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객체지향언어를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꼭 봐야하는 책인 것 같군요. GoF 책을 깊이 본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을 보고 다시 본다면 순식간에 다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희망을 안겨줍니다. -0-

GREAT CODE: 하드웨어의 이해

조엘이 C를 배우라고 하는 이유에서 가장 많이 강조한 부분은
진짜로 직접 실행되는 코드가 어떤건지 구조를 알지 못하면,
하이레벨에서 사소한 잘못된 선택으로도 치명적인 속도 저하나
프로그램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그런 이유였습니다. 물론
반론은 상당히 많은 주장이지만, 그 주장에 감명을 받아서
“나도 이제 저수준 세상을 알고 싶어!”라는 사람에게 시간은
되도록 적게 들고 손쉽게 익힐 수 있는 책으로
《Write Great Code》를 서점에서 처음 봤을 때, 아 딱 그책이군!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책은 처음에는 1권만 쓰고 반응을 보려는 듯 부제를 무지
조그맣게 썼는데, 결국 이번 달 중으로 2권이 나온다고 합니다.
1권은 “Understanding the Machine”이고 2권은 “Thinking Low-Level, Writing High-Level”입니다.
1권이 7월에 에이콘 출판사에서 번역판이 나왔습니다.
서점에서만 원서를 약간 보다가 번역판을 사서 자세히 봤습니다.
원서는 너무 비싸서 T-T..

예를 들면 파이썬에서 “0.3 더하기 0.3을 했는데 왜 0.6이 아니라
0.59999998이 나오나요.” 하는 파이썬 프로그래머는 정밀도가
요구되는 계산에서도 float타입으로 0.3을 계속 더해서 결국
천 번만 더해도 눈에 띄게 오차가 나버리는 심각한 상황을 맞기
십상입니다. IEEE-754가 어떤 것인지 얼핏이라도 알고 있는
프로그래머라면 그렇게 계산하면 당연히 오차가 누적되는 것을
알고 적절한 조치를 취했겠지만요~ 이런 문제는 우연히 하나씩
숨어있는 것이 아니라 살다보면 수도 없이 만나기 마련인데,
바로 그런 문제를 이 책의 앞쪽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수치 표현이나 스트링 표현, 인코딩, 캐릭터셋, 비트연산,
논리게이트 같은 컴퓨터과학 전공 1~2학년에서 대체로 배우지만
정작 시험치고 숙제할 때만 쓰고, 실전에 그게 연관이 있구나
하고 연관이 잘 안 되고 뇌 여기 저기에서 따로 따로 놀고 있는 것들~

그 뒷부분에서는 CPU, 인스트럭션, 스택, 힙, I/O를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각각이 컴퓨터구조, 컴퓨터시스템, OS, 파일처리론 같은 과목들에서 다루는 것이기는 하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식으로 하는 게 아무래도 현업 프로그래머들에게는 너무 시간이 많이 든다는 것을 고려해 보면, 이렇게 책 하나로 다 묶어버려서 요점만 설명하는 것도 괜찮은 접근인 것 같습니다. 흐흐;;

그런데 하나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 것은.. 제책과 편집..
글씨는 지금까지 봤던 컴퓨터 책 중에서 가장 작고..
한 페이지에 거의 40줄씩 나오는데다가.. 편집도 상당히
90년대 초반 교학사에서 나온 컴퓨터책들처럼 되어있어서
책을 읽고 있으면 “아아 내가 공부하고 있구나” 생각이 강하게
들게 해 줍니다. 게다가 자간도 좁고 책 크기도 너무 커서
(B5 풀 사이즈) 들고다니면서 흔들리는 곳에서 보기에
아주 곤란합니다. 막 고3의 심정으로 옆에 지나가는 사람들
다 붙잡고 “나 공부하고 있어요 주르륵” 하소연이라도 해야할
것 같은..
책 값이 25000원이면서도 제책 품질이 이렇게 떨어지고
품위가 없게 나온 것은 아무래도 우리나라 출판 사정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뜻일까요.. -_.-;;
적어도 읽고 싶은 마음이라도 나게 만들어주면 좋겠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내용은 다음의 사람들에게는 아주
유익할 듯 합니다.

  • 컴퓨터과학을 전공했지만 졸업하면서 책을 다 버리거나 후배들 줘버린 사람
  • 컴퓨터과학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모르는 말이 나와도 별로 두렵지 않은 사람
  • 책을 장 단위로 쪼개들고 다니면서 보기 때문에, 제책이 어떻든 신경 안 쓰는 사람
  • 회사에서 책 사라고 공지가 나왔는데 뭘 사야할 지 딱히 정해둔 것이 없는 사람

흐흐;

번역본 제책이 아쉬운 한편.. 2권 “저수준으로 생각하면서 고수준 코드를 짜기”가 기대가 됩니다. 1권을 보고 약간 아쉽다 생각이 드는 경우에는 Miguel도 추천한
Computer Architecture: A Quantitative Approach를 같이 보면 좋을 듯 합니다~

실용주의 프로그래머


그동안 김창준님의 글을 보다보면, 유난히 많이 언급되는
책 중의 하나가 바로 이 《The Pragmatic Programmer》였습니다.
책 제목에서도 모르는 단어가 나오는 것에(어휘력이 짧다 –;)
멋있게 뭔가 단정적으로 제목이 달려 있어서 인용문을 유심히
보지 않더라도 풍겨나오는 포쓰에 압도를 당해서 아직 읽어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 그런데, 얼마전에 드디어 한국어
번역판이 깔끔하게 나왔군요~

이 책은 실용적인 프로그래머가 일반적인 다른 프로그래머들에
비해서 어떤 것이 다른가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루는데,
아무래도 프로그래머가 원래는 실용적인 사람이어야 하는 만큼
스타일 문제, 문제 접근법, 아키텍처 디자인, 코드 제너레이션이나 빌드 자동화 같은 개발 기법, 효율적인 코딩을 위한 테크닉,
리팩터링, 테스트 방법 등 골고루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즉, 학교에서는-안-가르쳐-주지만-회사에서는-필요한 류의
것들을 많이 알려주고 있습니다.

물론, 그런 류의 책도 이미 상당히 많이 나와 있는 편이지만
이 책이 돋보일 수 있는 이유는 아무래도 프로그래머의 일생을
기준으로 한 조언을 해주는 것 때문이 아닌가 싶네요.
학교에서는-안-가르쳐-주지만-회사에서는-필요한 책들도 대체로
이런건-몰랐지 류로 열심히 놀래켜 주는 것으로 그냥 끝맺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에서는 프로그래머가 프로그래머로 계속
살아가는데 있어서 프로그래밍에서 보람을 얻고, 프로그래밍에
대해서 꾸준히 열정을 갖고 있을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직접적으로 “매일 아침 동쪽 하늘에
절을 하고 프로그래밍신에게 어쩌고저쩌고~” 이런 거는 아니고
고인 물을 깨끗히 하기
위해 매년 한가지씩 새로운 언어를 배워라.. 라던지 텍스트 처리에
좋은 언어를 배워서 프로그래밍과 디버깅이 지겹지 않도록 하라
이런 조언들이 있어서,
늘 하는 일인데 프로그래밍이 지겹고 싫어질 때
내가 그래서 지겨웠구나 하고 깨닫게 될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

GUI의 장점은 WYSIWYG(What You See Is What You Get), 즉 여러분이 보는 것이 여러분이 얻는 것이라는 것이다. 단점은 WYSIAYG(What You See Is All You Get), 즉 여러분이 보는 것이 얻는 전부라는 것이다.
실용주의 프로그래머, p. 139

명세서가 안심용 담요 역할을 해서 개발자들이 코드 작성이라는 무서운 세상으로부터 보호받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진짜 코드 작성단계로 옮겨가기는 더욱 힘들어진다. 이런 명세의 순환에 빠지지 말라. 언젠가는 코딩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러분 팀이 따뜻하고 편안한 명세서 속에 푹 싸여있는 것을 보거든, 밖으로 끄집어내라. 프로토타이핑을 해보거나, 예광탄 개발을 고려해보자.
실용주의 프로그래머, p. 344

참, 그리고 한빛미디어에서 놓쳐서는 안될 그 책!
《Head First Design Patterns》 번역판을 예약판매하는군요.
요새 좋은 책이 번역이 많이 돼서 참 좋습니다~

그나저나 요새 서점에 놀러가면, 컴퓨터 프로그래밍 쪽 서가에
앉아서 책 보는 사람들의 성비가 늘 거의 1:1에 가깝던데..
요새 무슨 일이 있는 걸까요?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