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출근하면서 읽던 책에서 흥미로운 내용을 발견해서.. (요새 놀라움의 연속~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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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군에서 흑인병사들이 거둔 혁혁한 공적에 기뻐했던 링컨은 노예 신분에서 해방된 자유민이나 노예출신자에 대한 인식을 크게 높였다. 하지만 자유가 생물학적인 평등을 함축하지는 않는다. 링컨 역시 더글러스 논쟁(Douglas debate, 1858)에서 강력하게 밝혔듯이, 이러한 기본적인 태도를 결코 버리지 않았다. 백인과 흑인 사이에는 육체적 차이가 있기 떄문에 사회적, 정치적인 평등의 이름 아래 함께 생활하는 것은 영구히 불가능할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살 수 없는 한, 그리고 함께 할 수 없는 한 우열의 위치가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백인에게 우열한 위치를 부여하는 것을 지지한다. 이 발언이 단지 선거 캠페인용 수사에 불과하다고 간주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다음의 사적인 메모를 인용한다. 이 글은 1859년에 링컨이 종이 조각에 휘갈겨 쓴 것이다. 흑인의 평등이라고! 허튼소리! 우주를 지으시고 그것을 지배하는 위대한 신의 통치 하에서 언제까지 무뢰한들이 이 따위 저속한 선동을 계속 외쳐대고, 천치들이 괴상한 주장을 떠들어댈 것인가. (Slinker, 1972, p.47) --- 스티븐 제이 굴드,<<인간에 대한 오해>> p.88 |
반면에 수 페이지 다음에 있는 다윈의 인용이 참 대조적으로 인상이 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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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다윈은<<비글호 항해기>>에서 이렇게 말했다."나는 리우데자네이루 근처에서 자신의 여자 노예의 손가락을 으깨기 위해 나사못을 준비해둔 노부인의 맞은편에 살고 있었다. 또한 매일 잠시도 쉬지 않고 욕을 먹고, 매를 맞고 혹사당해서 그로 이해 이 최저동물의 마음이 파괴될 지경에 이른 흑백 혼혈아 하인이 있는 집에 머물렀다. 나는 깨끗하지 않은 컵을 내게 주었다는 이유 때문에 (내가 나서서 말릴때 까지) 말 채찍으로 머리를 세 번이나 엊어맞은 6, 7세 가량의 소년을 보았다. (.....) 이러한 행위는 자신을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겠다고 고백하고, 신을 믿으며 신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지고, 또한 변명되고 있다! 자유를 떠벌이는 우리 영국인과 우리에게서 파생한 미국인들이 그러한 죄를 범했고, 지금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온 몸의 피가 끓고 마음이 떨린다." --- 같은 책 p.99 각주 |
흐흐 굴드가 다윈의 팬을 자처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인용이 약간 속보이는 면도 없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인종문제에 있어서는 상당한 영웅으로 알려져 있었던 링컨이 저런 면이 있었다는 것은 약간 실망스럽군요. -ㅇ- 흑흑~~~~~ 링컨 위인전에 이 내용을 쓰면 애들이 얼마나 실망할까요. ㅡ.ㅜ
위인들에 대한 환상은 일찍 깨질수록 좋을지도 모릅니다. ^^;
원래 역사라는 게 역사가의 시점을 반영하는 거기 때문에 역사 속의 위인들을 우리가 진짜로 접하게 된다면 무지 실망할 것 같습니다. 🙂
역사라는게 역사가의 시점과 사초를 쓴 사람의 시점을 반영하기 때문에 그만큼 왜곡되기 마련이고 그걸 다시 바로(?) 잡아 주는 것도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링컨 위인전에 저 내용을 쓴다면…아이고~
<<1984년>>에서 조지오웰이 말했듯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하며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처럼 결국 우리가 보는 역사란 진실을 얼마나 담고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도킨스와 리들리가 이 링컨의 글을 읽고 다윈의 글을 읽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의 진화와 관련된 본성(유전자)와 양육(환경) 둘중에 어느 것이 더 우선이며 더 중요한지 참 어려운 주제인 듯합니다.
링컨의 노예해방은 남부의 농장 노동력을 북부의 공장 노동력으로 변환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