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작년에 대학원 전공을 정한 이후 거의 만나시는 분들마다, 왜 열심히 하던
전산이 아니라 다른 걸로 하게 되었냐는 질문을 많이 하셨습니다. 사실 열심히 생각을
정리해서 정한 것이 아니라, 대충 엄부렁한 상태로 묘하게 끌려서 다가가게 되었는데,
여러차례 질문을 받으면서 답했던 것들을 생각나는대로 대충 모아서 글로 옮겨봅니다. ^_^
저는 현실적인 목표가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가까운 사람이
무척 필요로 하거나 아니면 누가 칭찬해주거나 하다못해 저라도 잠시 필요해야 뭔가를
만들게 되더군용~ 그래서 지금까지를 생각해 보면 전산은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이었다기
보다는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거나 칭찬받거나, 아니면 회사에서 붙어있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병역특례가 끝나가면서 전산을 오랫동안
계속 하려면 뭔가 새로운 목적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허전한 마음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사실 전산을 하다보면, 자기의 그런 목적을 자기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경영진이나
시대의 흐름, 커뮤니티의 환경에 따라서 결정이 되다보니, 정말 재미를 느끼는 목적이 아닌 것을
그래도 따라가야하는 경우도 생기고, 직접 결정한 것이 아니라 애착이 안 생기는 경우도 많고
그렇잖아요~ 예를 들어, 네트워크 전송 기술에 관심이 많아서 그쪽을 전공한다고 해도, 결국 사람들이 그걸로 뭐에 써먹을지는 모를 일이니, 시장의 눈치나 투자자의 눈치를 봐서 뭘 할지 결정해야 하고..
그런데 마침, 생물과 관련된 교양서를 여럿 읽고 있었기에, 결국 저도 그렇고 주변 사람도 그렇고
모두 사람이다 보니 누구나 생물에서 나오는 혜택을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이더라도 별로 멀지 않게
바로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과 소프트웨어만 해킹할 게 아니라 생명체도 해킹대상으로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완전 매료되는 바람에 복학 뒤에 뒤늦게 생물 수업을 듣기 시작해서 결국 이렇게 되었습니다.
뭐 물론 새로 선택한 분야에서도 과정 중에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내키지 않는 중간 단계가 없지는
않겠지만, 결국 적용되는 분야가 이제 70이 넘으셔서 귀도 잘 안 들리시는 외할아버지/할머니께도
“약 만들어서 사람들 치료하는 데 쓰이는 기술을 만들어요”라고 쉽게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한동안은 열심히 노력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_^*
뒷이야기
실제로 그 대화는 이랬습니다. =.=;
퍼키군: 약 만들어서 사람들 치료하는 데 쓰이는 기술을 만들어요.
외할아버지: 아~ 약만든다고?
퍼키군: 아니요. 약만드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기술을 만들어요.
외할아버지: 아~ 약사발 같은 것 만드는거여?
퍼키군: (차마 더 설명은 포기;) 아아 네 ;;;;;